해외출사

티벳사진여행기 1편

찬놀 2012. 11. 4. 00:06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옛날부터 현재까지 차(茶)를 실은 말이 다니던 길을 말한다.
차마고도는 운남과 사천, 티벳을 통하던 무역길로써 티벳 등으로 가는 물품이 차엽이 대종을 이루었고,
마방(馬幇)을 이용하여 운송하였기 때문에 현대의 목제홍 같은 학자에 의해 "차마고도"란 명칭이 붙게 되었다.

차마고도 무역길은 당송시대에 생겨나기 시작하여 명청 시대에 번창하였으며 중국의 민국시대
(20세기 초반)까지 유지 되다가 1950년대에 이르러 쇠퇴하였다.
차마고도는 하나의 길이 아니고, 운남과 사천을 출발하여 티벳의 광활한 지역에 이르는 마방들의 수 많은 길들의 흔적들이 모두
차마고도 라 불린다.

 

 

 

 

 

 

 

 

 

 

티벳출사 여행 경로

 

 

 

 

티벳은 2010년 가을에 7박 8일의 일정으로 한 번 다녀온 후로 2년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출사코리아를 통해 우리 부부는 일단 젤 먼저 신청을 해놓고 여러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내가 2010년에 갔을때의 아픈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산증의 고통이 심해 아내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며칠뒤 아내는 취소하고 혼자 가기로 맘을 먹었다...
그런데 ..
불과 출발 일주일전에 다시 번복하여 아내와 함께 떠나기로 하고 여행경비를 송금했다.
2012년 10월 22일 새벽 5시, 9박 10일간의 티벳출사여행 걱정과 기대와 설레임으로 출발하는데.....

 

 

인천에서 10월 22일 오후 3시경 출발하여 성도에 도착, 성도에서 짐을 풀고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10/23) 성도에서 라싸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가는데 발 아래로 펼쳐지는 광경이란 말로 표현할수 없을지경이다.
일행들은 그 귀한 장면을 놓칠세라 기내에서 모두들 흥분과 탄성을 지르며 좋은장면을 담는다고 정신이 없다.
다행히 빈자리가 여기 저기 있어 창가좌석에서 거치고 험한 설산과 운해를 담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우리가 감동을 자아내면서 사진을 찍는동안 비행기는 어느듯 라싸 공항에 도착했다.
깊고 높은 산골에 공항이 있다는것이 신기할정도이다.
위도상으로는 한국보다 한 참 아래 위치하고 있지만 해발이 높다보니 기온은 많이 내려서 춥고 건조한 날씨를 보여준다.

 

 

 

 

티벳처럼 여행가들에게 여러 상념을 일으키게하는 곳도 없을것이다.
중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점령되면서 조금씩 문명화, 개방이 되어가는곳, 그래서 차츰 퇴색되어가는곳이다.
종교가 곧 삶의 전부인 사람들. 종교가 사원 안에서의 형식이 아니라 먹고 말하고 살아숨쉬는 그자체가 종교인나라.
남쪽으로 히말라야 산맥과 북쪽 곤륜산맥 등으로 둘러쌓인 평균 고도 4900미터의 광활하지만 척박한 고원지대,
남북한의 15배나 되면서 인구는 고작 600만명...
4000미터급의 산높이는 명암도 못내미는 나라.
'세계의 지붕' 이라 불리우는... 중국에서는 서쪽의 보물창고라는 뜻의 서장(西裝)이라고 불리는 나라....

 

라싸공항에 도착하여 1시간여를 달렸을까 조그마한 소도시에 도착하게 되었다.

도로변에 위치한 중국식당에 들러 점심을 해결한다.

중국음식 특유의 향신로때문에 나는 입맛이 당기지를않아서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인구 10만명의 티벳 수도 라싸

 

중국 시짱[西藏]자치구

자치구 최대 도시이다.
티베트 남부, 브라마푸트라강(江)의 상류인 야루짱부강[雅魯藏布江]의 지류 라싸강이 이루는 넓은 곡저평야에 자리한다.
곡저평야일지라도 해발고도는 3,600m에 달하고, 내륙부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연평균기온 8.3℃, 최한월(1월)
평균기온 -1.7℃, 최난월(6월) 평균기온 16.7℃를 보여, 혹한과 혹서가 없다. 연강수량은 400mm에 불과하나
강수가 거의 여름에 집중해 티베트에서는 비교적 농업에 적합한 곳이 되어 있다.
라싸는 티베트어로 ‘신의 땅’이라는 뜻을 지니며, 시의 기원은 당대(唐代)의 7세기 초에 토번(吐蕃)의 왕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국가통일을 이룩한 데서 비롯된다.
그 뒤 정교일치(政敎一致)의 라마교의 종교 및 정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명(明)나라 말 이후에는 라마교 황모파(黃帽派) 최고위자인 달라이라마의 본거지가 되어 그 밑에 티베트 지방정부가 두어졌다.
그와 같은 정교일치의 체제는 1959년 3월 제14대 달라이라마가 중국군에 쫓겨 인도로 망명하기까지 지속되었다.
달라이라마의 겨울궁전인 포탈라궁은 17세기에 제5대 달라이라마가 건조한 13층의 건물로, 궁전 바깥쪽은 전체로서 하나의 요새를 이룬다.
시가지는 포탈라궁을 중심으로 동쪽의 구시가와 서쪽의 신시가로 나뉘는데, 종래 귀족 ·대상인의 저택 ·점포 지구였던 구시가는
오늘날 시민의 주택지구가 되고, 1964∼1965년에 건설된 신시가에는 병원 ·백화점 ·문화시설 등이 있다.
한편, 교외에는 공장들이 건설되어 자동차수리 ·시멘트 ·철강 및 발전 등 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쓰촨[四川] ·칭하이[靑海] ·신장[新彊]의 각 성(省) 및 자치구 내 각처로 자동차도로가 통하고, 정기항공로도 개설되어 있다.

 

 

 

 

 

점심식사를 하고 또 이동하여 포탈라궁에 이르른다.
높은 언덕배기에 세워져 있으며 이도시의 모든 건물의 높이는 이 궁보다 높이 지을수 없다고 한다.

 

 

 

 

 

- 포탈라궁
라싸 시내에 있는 포탈라궁은 정교일체인 티벳의 상징이자 정치, 종교의 중심지이다.
정무를 보는 백궁과 역대 달라이 라마들이 영탑이 안치되어 있는 홍궁으로 이루어져 있다.
1960년대 중국문화혁명때 티벳의 6000여개의 사찰들이 파괴되고 다행이 이 포탈라궁을 비롯하여 겨우 13개만 남았다고 한다.
옛 어른들이 왜 중국사람들을 대할때 땟놈이라 했는지 이해할 것도 같다.

 

 

 

 

 

 

티베트 국왕 송첸 감포가 7세기에 세운 건물은 파괴되어 지금은 거의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현재 포탈라 궁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은 대부분 5대 달라이 라마인 로장 걋소(1617~1682년) 시대에 지어졌으며,
부분적으로 13대 달라이 라마가 덧붙인 것이다. 마르포 리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포탈라 궁은 과거에는 정부 청사이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거처이기도 했다.
거대한 13층의 네모꼴 벽돌 건물로, 지붕에는 금박을 입히고 벽은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포탈라 궁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층계를 올라가야 들어갈 수 있다. '하얀 궁전'의 바깥쪽 아랫부분은 한가운데 솟아 있는 '붉은 궁전'을 감싸 안고 있다.
둘 다 예배당과 개인용 거주 공간, 그리고 접견실을 포함하고 있다.
색을 칠한 내부 안뜰의 서쪽에 있는 목조 층계는 하얀 궁전의 세속적인 구역과 행정 관청을 붉은 궁전의 기도실과 서재로부터 분리하고 있다.
하얀 궁전 안에는 서쪽 윙 4층에 큰 홀과 두 개의 작은 예배당, 팍파 락캉과 초걀 드룹푹이 있다.
붉은 궁전에는 회랑, 홀, 예배당, 성소, 도서관 등이 각 층에 흩어져 있다. 화려하게 장식한 중앙의 큰 홀은 신과 성인들,
선임 라마들에게 바치는 네 개의 예배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홀의 북쪽에 있는 성인들의 예배당은 포탈라에서 가장 신성한 성소이다.

 

 

 

 

 

 

 

 

 

조캉사원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

 

 

 

 

 

조캉사원 내부 모습

사진촬영이 금지된 지역이다.

 

 

 

 

 

조캉사원 옥상

 

 

 

 

 

조캉사원 옥상에서 바라본 바코르 광장

 

 

 

 

 

가운데 긴 장대뒤편 포탈라궁이 보인다.

 

 

 

 

 

조캉사원 옥상에서 인증샷

 

 

 

 

 

 

- 조캉사원
조캉사원은 몇달, 몇년간 3보1배로 오체투지를 하며 순례길을 가는 티벳 순례자들이 최종 종착지이다.
라싸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며 티벳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영적 중심지이자. 티벳인들을 하나루 묶어주는 티벳 불교의
중심지로써 이 조캉사원을 참배하는것이 티벳인들의 평생소원이라고 가이드는 말했다.
포탈라궁과 노블잉카 여름궁전이 티벳의 잃어버린 영화를 상징한다면, 조캉사원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티벳 문화와
삶을 보여준다고 한다.
티벳을 최 초로 통일했던 손챈감포오항이 왕비인 당나라 태종의 조카딸 문성공주가 당나라 장안에서 가져온 불상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사원으로 포탈라궁, 노블링카궁에 이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한다.

 

바코르 거리는 조캉사원으로 향하는 순례길이며 또한 티벳 최대의 시장이기도하다.
조캉사원을 참배하러 온 순례자들, 사원에 바칠 공물부터 여행자들의 기념품 등 온갖 물건을 파는 장사꾼,
장을 보러온 지역주민, 라싸의 영성을 찾아 몰려든 이국의 여행객까지 어우러져 바코르에는 항상 활기가 넘친다고 한다.

거리 곳곳엔 공안, 경찰, 군인 등이 삼엄하게 경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곧 일어날듯 50미터 간격으로 보초를 서고 있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들이다.
장사꾼과 순례자들은 그져 무표정으로 자기일에 몰두하고 있을뿐이다.
돌아다니다 힘이 들어 잠시라도 앉으려고 하면 앉아있을 자유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가방이라도 바닥에 내려놓으려면 그것도 허용치 않는다...
왜 그러냐고 나중에 가이드한테 물어보았더니 2009년부터 티벳인들이 자기몸에 불을 지르며 중국침략 이후 통치에
저항하며 분신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렇게 삼엄하게 한다고 한다.

 

 

 

 

 

조캉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바코르 광장 주변에는 불교용품을 비롯해 생활용품까지

다양하게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이 형성되어있고, 그래서 순례자, 관광객, 장사꾼 등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조캉사원앞 바코르 광장에서 분신과 관련하여 기사를 잠시 검색해봤다.

 

[2009년 이후 발생한 35명의 티베트인 분신과 이로 인한 평화 시위는  현재는 중국 쓰촨성으로 강제 편입되어
있는 '캄'이라 불리는 동부 티베트와 칭하이성에 속한 '암도'지역 티베트인 자치지역에서 발생했고 티베트
자치구에서는 처음이며 더욱이 민족 최고 성지라고 불리는 조캉사원 앞에서 분신했다는 것은 모든 티베트인에게주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중국 정부이기에 이번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라싸 지역과 인근 사원들의
단속또한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자유 아시아 방송이 전했습니다.]

 

[동부 티베트를 중심으로 시작된 분신은 2009년 2월 27일 끼르티 사원 '따빼'스님이 처음 이였고,
 이후 2011년3월 16일 같은 사원의 21살 '푼촉'스님이 소신공양을 했고 이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승복을 벗은 전 승려들과 비구니 스님들을 비롯 농부, 유목민, 여학생에 이어 이번 라싸에서는 식당에서 일하는 청년 2명이
티베트자유와 14대 달라이 라마 티베트 귀환을 위해 희생되어 갔습니다.
중국 침략 이후 통치에 저항하며 독립을 위해 늘 앞장 섰던 계층들이 승려들입니다. 
전통적으로 사회를 이끌어 왔던 중심이고 지금도 티베트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기 때문에 이번 라싸에서 일반인이 소신공양을 했는데
승려들이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번 분신으로 인해 다른 티베트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조캉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시장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다.

 

 

 

 

 

 

 

 

 

 

 

 

 

 

 

 

 

 

시장에서 인증샷

 

 

 

 

 

 

조캉사원 건물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순례자들

 

 

 

 

 

 

무엇을 빌고 무엇을 원하는지 열정이 대단하다.

 

 

 

 

 

 

마니차를 돌리면서 주문을 외는 할머니들.

 

 

 

조캉사원 주변 시장을 둘러보고 저녁식사를 한후 호텔을 들어가는데 고산증세가 심하게 온몸에 엄습하고 있었다.
고산병의 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만사가 싫어서 집으로 가고싶다는 불가능한 생각에 잠기고
구토증세와 두통이 심해 결국 호텔방에서 링거를 맞고 응급조치가 이뤄졌다...
우리나라 돈으로 13만원이란다...

 

고산병의 원인은 해발 2500~3000미터 이상 고지대의 희박한 산소농도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단 고산증세가 나타나면 두통이 오고 어지러움증과 구토까지 동반하는데 그 고통은 겪은사람만이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데 낮은 대기압으로 인한 뇌압과 산소농도가 희박하기때문이라고 하고,
어떤사람이 고산증세가 나타나는지는 미리 짐작할수가 없다는것이다.
평소에 우리가 생각하는 의학적인 건강의 잣대와는 무관하다는게 전문의사들의 이야기도 있기도 하다.
체격, 체력, 근력, 지구력, 심폐기능, 몸무게, 술, 담배 등등 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증상으로는 뇌압상승으로 인한 심한두통 그리고 구토.
산소 희박에 따른 호흡곤란, 무기력증, 손발저림, 입술이 파래지는 증세 또 식욕저하, 수면장애 등..
몸소 체험해보니 궂이웹에서 검색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고통속에서도 가장 힘든것이 머리통을 쥐어뜯는 느낌같은 두통이었다.
치료약이라고 먹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고, 혈액을 원할하게 도와준다는 비아그라를 먹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체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산병에 최고의 약은 첫째 둘째 셋째도 무조건 낮은곳으로 내려가는것외엔 없는게 답이다.
본인은 3000미터 아래로 내려오니 거짓말처럼 말짱했다.

 

 

 

 

 

 

내가 고산병으로 앓고 호텔침대에 누워있는동안 아내는 같이간 일행들과 포탈라궁의 밤풍경을 담으러 간 모양이다.

 

내가 담지 못한 포탈라궁야경이다.

 

 

 

 

 

 

 

 

 

 

 

 

 

다음편에 계속 ....